질리언 테트 지음
문희경 옮김
어크로스
p.156-157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되었다. 왜 직원들이 철없는 아이들처럼 자기 사물함에 몰래 부품을 숨겨두는 걸까? 브리어디는 직원들이 불가능에 가까운 처지로 내몰렸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미국 자동차 생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대량 생산 시스템은 직원들의 성과를 톱니처럼 양적 기준으로 측정했다. 조립라인에서 완성된 자동차가 더 많이 출고되면 보너스가 지급되었고, 생산량이 줄어들면 보너스가 나오지 않았다. 반면에 일본과 독일의 자동차 회사에서 시작된 새로운 '질적 운동'에서는 제품의 결함 여부로 직원들을 평가했다. 이런 변화가 투자자들에게도 무척 인상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마찰이 생겼다. '질적' 운동이 한창 무르익을 때도 미국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양적' 측정법으로 성과를 평가받고 그에 따라 임금을 받았다. 공장에는 여전히 직원들을 톱니로 취급하는 위계질서가 잡혀 있었다.
그래서 직원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나름의 대처 전략을 고안했다. 바로 책임 전가 문화다. 문제가 생기면 직원들이 처음 보이는 반응은 (자체적으로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다른 사람이나 상황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었다. 자기에게는 문제를 바로잡을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 자기 잘못을 인정하면 그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해요." 물류 담당자가 브리어디에게 말했다. "그러니 다른 교대조의 다른 부서로 책임을 돌리는 것이 훨씬 간단하죠. ...... 그러니까 경험상 '몸을 사려라'를 철칙으로 삼는 겁니다." 실제로 브리어디는 공장에서 들은 대화 기록을 검토하다가 "직원들이 서로를 칭찬할 때보다 비난할 때가 일곱 배 더 많다"는 점을 포착했다.
브리어디는 투자자와 최고경영진과 일부 정치인의 주장처럼 노동조합과 회사의 갈등이 제너럴모터스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보는 것은 오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노사 갈등은 더 큰 구조적 문제와 모순에서 불거진 증상이었다. 따라서 제너럴모터스에서 하향식 관점으로는 생산성 문제를 바로잡을 수 없었다. 직원의 눈으로, 아래에서 위로 보는 관점이 필요했다. 언론과 투자자, 정치인, 경영진은 노동조합을 둘러싼 가시적인 갈등에 집착하지만 사실 그들이 잘 모르는 더 중요한 원인은 조립라인 직원들이 사물함에 부품을 빼돌리는 게임으로 인해 공장의 규율이 지속적으로 서서히 무너지는 것이었다.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