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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이동

호학당 이야기/책과 밑줄

by 호학당 2024. 12. 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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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이동

레이첼 보츠먼 지음

문희경 옮김

흐름출판

 


 

 

 

p.114-116

간단한 실험을 하나 해보자. 모르는 사람에게 1분만 휴대전화를 서로 바꾸자고 말해보라. 당신은 그 사람의 전화기를 들고 있고, 그 사람은 당신 전화기를 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에게 이렇게 말하라. “어떻게 하든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나는 금융자문가부터 학생, 부동산 중개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실험을 해보았다. 만찬장, 회의석상, 강의실에서도 해보았다. 실험 결과는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경질적으로 웃는 사람도 있었다. 우물쭈물 전화기를 건네면서 엎어놓는 사람도 있었다. 몇몇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메시지와 사진과 트위터를 보기도 했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이 몹시 불편해했다. 그저 남의 전화기를 1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들고 있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에어비앤비는 우리 삶에서 가장 내밀한 것들 중 하나인 잠 자는 장소를 교환하기 위해 신뢰를 구축해야 했다. 앤틴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 사이에 올림픽 수준의 신뢰가 쌓이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신뢰를 구축하는 문제로 인해 앤틴의 업무는 흥미로우면서도 어려워졌다. “회사 규모가 커져도 대다수 사람이 에어비앤비가 뭐하는 곳인지 모를 테고, 더 많은 사람이 대충은 알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에어비앤비의 제안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머릿속에 처음 떠오르는 생각은 “대체 뭐하자는 소리야?”였을 것이다.

에어비앤비 사이트를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에어비앤비가 사이트에 올라온 집을 모두 소유하고 사람들에게 집을 빌려주는 건가 궁금해했다. “어리석은 말처럼 들리지만 어리석은 게 아닙니다. 대개 사람들이 생각하는 휴가 개념이 그렇습니다.” 앤턴의 말이다.

사람들이 에어비앤비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특이하게 에어비앤비 사이트에는 ‘에어비앤비는 어떻게 운영될까요?’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없다. 실제로 어떤 회사의 홈페이지를 처음 방문하면 ‘회사 소개’나 ‘신뢰와 안전’ 같은 항목을 찾아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항목은 대개 페이지 맨 아래 있다. 에어비앤비의 맨 앞 페이지 한가운데에 있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항목은 방문자의 흥미를 부추기는 단순한 질문이다. “어디로 가십니까?”

앤틴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개념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람들이 이미 아는 것과 연관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사이트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은 대개 교육 자료 메뉴를 먼저 찾지 않습니다. 아니, 그런 자료는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전혀 관심이 없어요. 곧장 검색창으로 가서 자기가 사는 지역을 검색합니다. 잘 아는 곳이니까요.”

런던에 사는 사람이 뉴옥에서 머물 곳을 위해 에어비앤비를 처음 방문했더라도 바로 뉴욕을 검색하지 않고 우선 런던부터 검색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집에서 더 가까운 곳, 가령 캄덴 같은 동네를 검색한다. 앤틴은 말했다. “그리고 검색한 결과 뜨는 지도를 보고는 ‘아, 아, 알겠다. 여기는 우리 집 근처네. 저기 강가에 있는 집이구나. 원하면 이런 데서 묵을 수 있겠군. 이제 감 잡았어, 아하’라고 생각합니다. 대개 이런 순서죠.”

에어비앤비는 처음부터 이런 식의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사이트를 설계했다. 드롭다운 메뉴를 넣어서 게스트가 리스트에서 목적지를 선택하도록 설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지나치게 지시적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들어오는 이용자가 그들이 아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없을 뿐더러 그들이 사는 집 근처의 다른 집을 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도 없다. 사람들은 이미 아는 것을 신뢰하지만 안다고 생각하는 것, 그러니까 실제로는 완전히 새로운 대상이지만 이상하게 친숙해 보이는 대상도 신뢰한다. 에어비앤비는 이를 영리하게 활용해 크게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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