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태 지음
북스톤
p.209-211
'브랜드 없는 상품(No brand goods)'임을 내세우며 1980년에 설립된 무인양품(MUJI). 고객에게 편리하고 실용적인 생활을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가성비가 좋다는 이미지를 심으면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안이해진 경영진이 초심을 잃고 제품군을 늘린 데다 아이덴티티를 잃고 컨셉이 모호해지던 터에, 유니클로와 다이소의 출현, 일본 경제의 침체에 따른 소비자 구매력의 감소 등 악재가 겹치면서 경영이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1999년을 정점으로 내리막에 들어서더니 2001년에는 바닥을 치며 중환자가 되었다.
이때 지휘봉을 잡은 마쓰이 타다미쓰(Matsui Tadamitsu) 사장은 두 가지 핵심전략으로 무인양품을 재기시키는 데 성공한다. 하나는 모든 업무의 매뉴얼 작업화이다. 그는 무분별하게 늘어난 매장들이 같은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방법으로 해결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어떤 사소한 작업이라도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이를 표준화했다. 그 집적이 2000페이지에 달하는 매뉴얼, '무지그램(Mujigram)'이다. 그는 다른 기업도 너무 비대해지기 전에 미리 업무의 중심이 되는 분명한 룰을 만들라고 조언한다.
다른 한 가지는 컨셉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디자이너의 영업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업의 철학과 컨셉을 눈으로 보이게 만드는 역할이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마침 철학적 깊이가 있는 디자이너 하라 켄야(Hara Kenya)가 아트디렉터로 조인한다.
하라 켄야는 공(空)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잡고 최소한의 디자인을 하되 '비움'은 소비자가 채워나가게 한다는 철학을 내세웠다. 그가 쓴 《디자인의 디자인(Design of Design)》 책이 설명하듯이, 비어 있다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다 포용할 수 있는 잠재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철학은 제품뿐 아니라 매장이나 광고, 포장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무인양품의 단순성(simple), 편리성(convenient), 실용성(practical), 합리성(rational)이란 이미지를 소비자가 일관되게 인식하도록 전하면서 턴어라운드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타다미쓰의 방식이 하라켄야의 디자인과 만나 꽃을 피웠듯이, 애플이 재기한 데는 스티브 잡스의 철학이 조너선 아이브라는 출중한 디자이너를 만났기에 가능했다. 철학 있는 경영자와 궁합이 잘 맞는 디자이너의 결합은 성공의 지름길이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디자인이 있기 전에 경영자에게 뚜렷한 개념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려고 외국의 유명한 디자이너들을 비싼 몸값에 영입하고도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은 전달해야 할 기업의 방향이나 철학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나 철학이 있어도 꽃(디자인)으로 피어나지 않고 땅에 묻혀 있기만 하면 빛을 발하지 못할 것이다. 거꾸로 꽃을 보기 좋게 만들 수 있는 디자이너를 영입해도 뿌리(철학적 깊이)가 약하면 그냥 조화로 끝나고 만다. 꽃은 보이지 않는 뿌리에서 생겨난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제공하고 싶은지, 우리 기업의 존재이유가 무엇인지 그 근본적 철학이나 개념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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