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김영사
p.264-265
모든 과학 분야의 모든 근본적 논쟁이 깔끔한 종결에 이르는 때가 언젠가 도래하리라는 것은(그때에 자비로운 신께서 우리 모두를 인도하시어, 우리가 계속 살아가면서 그 아름다운 상태를 망치지 않아도 되리라는 것은) 그럴싸하지 않은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다원주의적 과학 단계가 혼란스럽고 불확실하며 따라서 더 통일된 단계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이 과연 옳은지도 불명확하다. 찬란한 통일과 합의의 순간은, 기초적인 수준의 통찰을 위해서는 필수적이지만 구체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그리 유용하지 않은 깨달음의 순간(epiphany moment)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 그 순간은 과도한 단순화와 과도한 확신의 순간이며, 그 다음에 과학자들은 대개 더 현실적이고 노련한 마음가짐으로 되돌아가 다시 난점들, 예외들, 문제들, 흠집들, 숨어 있는 개념적 불합리들, 역설들, 실패한 예측들, 수수께끼 같은 새로운 현상들을 다룬다. 분자유전학이 성숙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왓슨과 크릭의 '중심 교리(central dogma)'를, 곧 정보가 DNA에서 RNA를 거쳐 단백질로 흘러간다는 과도하게 단순화된 생각을 벗어난 덕분이었다. 기본입자 물리학은 전자, 중성자, 양성자만 다루면 되는 즐거운 상태에 안주할 수 없었다. 만약에 코페르니쿠스적 천문학이 코페르니쿠스 자신의 등속원운동에 대한 황홀한 애착에 머물렀다면, 그 천문학은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자연의 복잡한 진창들에 빠져 저속해지고 지저분해지면, 다양하고 난해한 문제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하려 모색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다원성이 아마도 발생할 것이다. 이 흔하고 힘겹고 가치 있는 과학 발전의 단계들을 과학사학자들과 과학철학자들이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인정하겠는가? 과학 교과서들에 나오는 과학사 서술은 성공 이전과 이후의 지저분한 상황을 관행적으로 무시하지만, 우리가 그 관행을 따르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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